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불러온 혁신가가 사망하자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여전히 애플 제국은 건재하고, 시가 총액은 2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KOSPI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 총액 총합보다 많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경이로운 성과를 달성했을까요?
애플이 이룩했던 성장의 중심에는 팀 쿡(Tim Cook) 대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 특유의 디자인을 탄생시킨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도 있습니다. 이 둘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애플을 이끌어 왔었는지, 베일 속에 숨겨져 있었던 스토리를 파헤친 한 기자가 있습니다. 바로 트립 미클(Tripp Mickle)입니다. 그는 잡스 사후 격동의 10년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잡스 이후의 애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오늘의 추천 도서는 바로 '애프터 스티브 잡스'입니다(e북 추천).
숫자
2011년 팀 쿡은 애플의 CEO가 됩니다. 그는 철저하게 숫자를 잘 관리하는 인재였습니다. 특히 재고관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가 애플에서 진행했던 생산공장 재배치 및 재고량 조정은 영업 이익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과거 컴팩(Compaq)이라는 기업에서도 뛰어난 재고관리 능력을 보여준 덕에 잡스에게 스카우트될 수 있었습니다.
팀 쿡은 숫자를 통한 경영의 달인이었으나 디자인 쪽으로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디테일까지 챙겼던 잡스와는 달리, 디자인 관련 미팅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아이브라는, 애플워치와 에어팟을 탄생시킨, 완고한 잡스를 설득할 수 있었던 훌륭한 디자이너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팀 쿡은 본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숫자에 더 능숙한 사람들을 경영진으로 채웠습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직관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회사를 떠났고, 아이브도 그 뒤를 이었습니다. 끝내 숫자로 증명한 팀 쿡의 실적은 그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정치
팀 쿡이 숫자에만 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외교에도 탁월했습니다. 그는 원가 절감 측면에서 중국을 생산 거점 기지로 삼았습니다. 특히 폭스콘(Foxconn)의 중국 허난성 공장은 세계 최대의 아이폰 조립공장이었습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애플에게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소위 '중국 때리기'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중국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려 하자 팀 쿡은 직접 나섰습니다. 2018년 당시 애플은 미국 내 3,500억 달러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액션 덕분에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애플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클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주목받게 됩니다. 사회적인 여러 압박 속에서 팀 쿡과 잡스는 달랐습니다. 정치권과의 접촉을 꺼렸던 잡스와 달리 팀 쿡은 적극적으로 나서 조직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와 회사 이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 이어 갔습니다. 팀 쿡의 현실주의적인 사고와 냉철함 덕분에 애플은 양 쪽 모두를 챙겼고, 조직은 계속 거대해졌습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대표는 '리더는 조직의 뇌'라고 초격차에서 언급했었는데요, 이에 따르면 팀 쿡은 기가 막히게 뇌 역할을 잘 수행했던 것입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도 대기업 총수들이 자주 불려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불려 나가는 데는 국경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서비스 기업
아이팟과 아이폰이 탄생할 당시, 애플은 하드웨어 업체였습니다. 심플한 고유의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은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습니다. 하지만 팀 쿡은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더 큰 숫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애플을 하드웨어에 업체에서 서비스 업체로 변신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예시가 애플뮤직이었습니다. 애플의 하드웨어를 '유통 기계'로 발판 삼아, 불과 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애플 뮤직 유료 구독자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경쟁사인 스포티파이(Spotify)가 6년에 걸쳐 완성한 기록이었습니다(2023년에는 8,000만 명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은 애플의 시가 총액 상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월 구독료로 꾸준한 현금이 유입되었고, 투자자들도 이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테크 기업을 쳐다보지 않았던, 가치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애플 주식을 대량 매수하기도 했습니다(최근 애플 주식 1,000만 주를 매도했다고 합니다). 이는 시장을 매우 놀라게 한 이벤트였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체제 전환은 '플랫폼 시대'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이었습니다. 애플 만의 플랫폼을 세우고, 안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람들이 애플을 벗어나도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업성을 증명하고, 성과로 말하는 팀 쿡을 인정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애플 전 직원에게 잡스의 죽음에 대한 공지가 나간 후 13년이 흘렀습니다. 애플의 어두운 미래를 전망했었던 시장과 달리, 미국 주식시장을 주도하는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에 여전히 애플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먹구름이 다시 드리우고 있습니다. AI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고 있을뿐더러,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위반 소송으로 인해 회사가 분리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으로 인한 애플 생태계의 독점적 지배력이 제소의 원인입니다. 이 같은 새로운 위기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지, 애플의 미래 10년을 다시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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