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갈 때,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가벼운 플라스틱 덩어리이었지만, 버튼을 꾹 누르며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남겼습니다(필름을 다 쓰고 나서 카메라를 바닥에 내리치면, 플래시가 반짝 터지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사진은 순간순간의 이미지, 그때 그 시절의 이미지입니다. 누군가는 어떤 한순간을 추억에 남기고자 사진을 찍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낼 때 사진을 태워 하늘로 날립니다. 기억의 한 조각을 남긴다는 것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사진기라는 기계장치를 소중히 다룹니다.
다만 예전처럼 사진기를 애지중지하며 따로 들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능 측면에서도 스마트폰은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그럼에도 고성능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범접할 수 없는 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1914년 독일에서 탄생한 하이엔드 사진기 브랜드인 라이카(Leica)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를 담은 추천 도서는 '매거진 B_라이카'입니다.
해당 도서는 라이카의 브랜드 스토리를 알고 싶은 분, 라이카와 다른 브랜드의 차이점이 궁금한 분 그리고 사람들에게 라이카가 갖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픈 분들께 추천합니다.
현미경에서 사진기로
1849년 옵티컬 인스티튜트(Optical Institute)라는 기업이 설립됩니다. 이 기업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생산했습니다. 몇 년 뒤 이 기업에 에른스트 라이츠(Ernst Leitz)라는 인물이 합류합니다. 그는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기계공이었습니다. 그는 현미경 성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회사를 본인이 인수한 뒤에는 렌즈 설계를 비롯한 기술 발전에 적극 투자하였고, 현미경을 넘어 망원경과 영사기 등 다양한 광학 장비로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4년 역사적인 라이츠(바뀐 사명) 최초의 35mm 필름 카메라를 제작합니다. 우르라이카(UR-Leica)라고 불린 이 모델은 영화용 필름을 사용하는 일종의 스틸 컷 카메라로, 소형 카메라의 시초 격으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제1차대전 이후, 1913년에 개발한 프로토타입을 발전시켜 '라이카 I'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 공개합니다. 이때 상품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무거운 카메라만 존재하던 당시에 라이카 I은 35mm 필름 카메라의 대중화를 이끈 큰 이벤트로 손꼽힙니다. 스튜디오 안에 존재하던 무거운 카메라 이미지를 벗게 만들었고, 일상 속으로 카메라를 침투시켰기 때문입니다.
라이카 I 성공을 기반으로, 라이카는 지속적으로 기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라이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카메라로 인정받는 '라이카 M3'를 선보입니다. 라이카 M3가 주목받은 이유는 이전에 없던 RF 카메라였기 때문입니다. 라이카는 지금까지도 RF 카메라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RF 카메라는 뭐가 다른 걸까요?
RF 카메라
RF 카메라란 뷰파인더(초점을 맞추기 위한 장치)와 렌즈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카메라를 의미합니다. RF 카메라의 특징으로는 촬영 시 렌즈의 밝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진기 내부에 미러가 없어서 사진기 사이즈도 크지 않습니다. 다만 단점이 매우 많습니다. 초점을 맞추기 어렵고, 설계가 복잡하여 수리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메라 내부 구조상 뷰파인더에서 보는 화각(카메라 앞의 장면 중 얼마만큼을 카메라 센서로 캡처하는가를 의미)과 실제로 촬영되는 화각에 시차가 존재합니다. 한 마디로 사용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일본 업체들이 SLR(Single Lens Reflex)을 개발한 뒤부터 라이카는 위기를 맞습니다. SLR 카메라는 RF카메라와 반대로 촬영자가 보이는 화상과 실제 사진의 화상이 일치합니다. 가격도 RF 카메라보다 저렴하고 사용하기도 훨씬 쉽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라이카도 전자식 시스템을 도입한 M5을 출시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그들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RF 카메라로 돌아갔습니다. 역시 어려울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죠.
최근에는 RF 카메라 모델들이 옛날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대부분 DSLR이나 미러리스 기종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라이카는 고집스럽게 RF 카메라인 M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RF 카메라 중에선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특히 렌즈는 극도로 정밀한 수공업의 결과물로 세밀한 공정과 40단계 이상의 엄격한 테스트 과정을 거칩니다. 디자인과 조작 측면에서도 일체의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합니다.
라이카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성과 독보적인 기술력을 지녔지만, 스마트폰과의 연동 그리고 클라우드 등의 신기술과의 협업을 배제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전통과 스마트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가치가 더욱 커지는 시기이지만,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질 수도 있기에 고민이 더욱 클 것 같습니다.
라이카를 좋아하는 사람들
라이카는 비싸고 사용하기 어려울뿐더러 성능 좋은 대체제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라이카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라이카가 다루기 어려운 장비이고 불편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다만 1990년대 초반의 전설적 사진가들이 사용한 방식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진작가는 오히려 '긴장감'을 즐기기도 합니다. 기존에 고성능 카메라는 너무 편하고 쉬워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편하게 연사로 찍다가 그중에 잘 나온 사진 하나 건지는, 예측하기 쉬운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라이카는 찰나를 잡아내는 과정이 단 한 번의 클릭이기에, 결과물의 깊이도 달라진다고 평합니다. 뷰파인더와 렌즈가 떨어져 있음으로써 생기는 찰나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여유를, 누군가에게는 긴장감을, 누군가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합니다(고수의 반열의 오르면 그런 느낌이 드나 봅니다). 사진 촬영의 진국을 맛보고 싶은 분들이 찾는 카메라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1849년 현미경 제조 기업을 모체로 시작한 라이카. 1914년 자사 최초의 소형 카메라를 개발한 이래, 카메라 브랜드 중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RF 카메라라는 다루기 어려운 장치를 추종하는 팬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들은 라이카로부터 다른 카메라 브랜드에서 얻을 수 없는 '찰나'를 즐기고 있습니다. SLR을 시작으로 일본 기업들의 역습을 맞아 한 때 고전했었지만, 그럼에도 라이카는 여전히 라이카로 남아 있습니다. 전통과 스마트 시대로의 변화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라이카의 미래 모습이 더욱 기대됩니다. 그때도 라이카는 역시 라이카로 남아 있을지도 한 번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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